7월 18일 (수) ... 씨엠립의 앙코르 유적군 1
아침 일찍 서둘러 공항으로 갔다. 원래 일정으로 보자면 오늘 아침을 씨엠립에서 맞아야 하건만 닌빈 일정이 들어가면서 앙코르 일정이
단축된 것이다. 아쉽지만 마음을 접기로 했다. 프놈펜에서 씨엠립으로 가는 비행기는 일명 "쌍발기"라는.. 앞에는 프로펠러가 달린 작은
비행기였다. 비행기도 아주 산골 비행기를 타는 듯하다. 출발하자 처음에는 위에서 연기 같은 것이 나온다. 문제가 생겼나 싶었지만 실은
드라이 아이스가 나오는 것이었다. 약간의 불안감을 안고 앙코르 유적군이 비행기에서 보이나 하고 열심히 내려다
보았다.
여기서도 북한 김영남 환영깃발이 곳곳에 있다. 호텔에 짐을 놓고 앙코르 유적군으로 향한다.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에 예술의 꽃을 피웠던 앙코르 사람들은 자신들을 '크메르인'이라고 불렀다. 크메르인의 앙코르 역사는 후난시대(1
~6세기 중엽), 전 앙코르 시대(6세기 중엽 ~ 8세기 말), 앙코르시대(9~14세기경), 그리고 쇠퇴기(15 ~ 19세기의 발견까지)이다.
최초의 500년 동안은 인도에서 건너온 민족인 후난의 지배를 받았고, 6세기경부터 독립을 하였는데 메콩강 북쪽에 있는 '첸라'가 후난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첸라가 크메르 인들이 세운 최초의 나라이다.
9세기에 접어들어 자야바르망 2세에 의해 통일되고
인드라 바르망1세 때는 완전한 독립국이 된다. 앙코르를 왕국의 수도로 정하고 중앙 사원을 건립하여 대도성을 만든 사람은 청년 왕
아쇼바르망1세이다. 9세기에 인도 불교의 영향을 받아 크메르의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꽃피우게 되며, 그 뒤 200년 동안 크메르 왕국의
번영과 함께 많은 건축물과 예술품이 생겨났던 것이다.
앙코르 유적군에서 둘러볼 유적지는
앙코르 톰 : 12세기 말/도읍지/ 자야 바르만
7세왕
바이욘 사원
: 12세기 말/불교/자야 바르만 7세
왕
바푸온 사원 :
11세기 중반/흰두/유다야티다야 바르만2세
왕
피메나카스사원:10세기중반/흰두/라젠드라 바르만2세
왕
프레아칸
사원:12세기 말/불교/자야 바르만
7세왕
따께오 사원
: 10세기 중반/흰두/자야5세/수리야 바르만
1세왕
타프롬
사원/12세기 말/불교/자야 바르만 7세
왕
앙코르 와트
사원 : 12세기 초/흰두/수리야 바르만2세 왕
이다. 현재 건물이 1000개도 넘게 남아 있다. 주위 12킬로미터나 되는 수로와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성 앙코르 톰(이 도성 안에는 100만 이상의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의 동쪽과 서쪽에는 논과 밭에 물을 대기 위한 거대한 저수지가 두개나 있다. 서쪽 저수지는 세로가 2300미터, 가로가 8,000미터이다. 동쪽에 있는 지금은 흙과 모래에 묻혀 버린 저수지는 제방의 길이로 재어 볼 때 세로가 1800미터, 가로가 7000미터의 길쭉한 네모꼴이며 다 같이 바닥은 평탄하게 돌을 깔아 놓은 것이다. 인공 저수지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앙코르 유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고대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부터 살펴 보아야 한다. 인도에서 기원전 1000년 에서
기원후 2세기에 이르기까지 원주민 브라민 민족과 새로 이주한 아리아 민족 사이의 전쟁을 주제로 하고 여기에 인도 신화를 곁들인 18장 10만
행의 시구. 문자는 산스크리트어로 되어 있으며 몇 사람의 승려가 수세기 동안에 쓴 것이다.
그 중에서
유해교란(乳海攪亂)에 대해 살펴보면 아득한 옛날 제석천이 자재천의 불신인 위대한 성자를 화나게 했기 때문에 위대한 성자는 여러 신에게
주술을 걸었다. 신의 힘이 약해지자 나쁜 악마인 아수라가 날뛰기 시작함. 신들이 비슈누에게 상의하자 악마들과 화해하고 그 동안
영원히 죽지 않을 영약을 만들기로 하였다. 약을 만들기 위해 강력한 약초를 바다에 던져 놓고 휘젓는 막대기로는 만다라 산을, 끌어당기는
밧줄로는 큰 뱀인 바스키를 택하였다. 신들은 꼬리 쪽을, 악마들은 머리 쪽을 잡고, 비슈누 신은 분신의 술수로 거대한 자라가 되어
바닷속에서 빙빙 도는 축이 되었다. 신들이 끌고 악마들이 끌면 휘저은 상태가 되나 악마들의 수가 많아 균형을 유지하는 비슈누 신을 돕기
위해 라마신의 편인 원숭이 왕 하누만이 원숭이를 데려와 신의 편에 서게 된다. 빙글빙글 도는 큰 자라 때문에 바다는 밑바닥까지 일대
요동을 일으키고 물고기들은 우왕좌왕 난리를 친다.그동안 저어진 바다에서 아름다운 공주와 아프사라스(춤추는 하늘의 선녀)가 태어나고
라크슈미(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가 만발한 연꽃을 타고 탄생했다. 여신의 뒤를 이어 여러 동물이 태어나고 마지막으로 죽지 않는 약인
아무리타가 바다에서 솟아 올라 항아리에 받자마자 악마가 빼앗아 도망쳤다. 비슈누신이 영약의 항아리를 되찾아 신들에게 주어 악마들을
지옥으로 쫓아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바이욘 사원부터 갔다. 성벽에는 부조가 새겨져 있는데 크메르 왕가의 역사나 궁정생활, 이웃나라와의 싸음, 사냥, 낚시질, 건축광경, 레슬링이나 서커스 닭싸움 등 일상생활의 모습에서부터 전설속의 이야기들이 너무나 자세하게 새겨져 있다. 조각되어 있는 돌들은 60km 떨어진 프놈바켕 석산에서 돌을 운반하였으며 조각이 잘 되는 사암이 주요 돌이다.
바이욘사원은 돌의 규격이 모두 다르며, 지그재그로 쌓고,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밀착한 뛰어난 건축기법으로
오랜기간 동안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바이욘 사원은 자비로운 관세음을 표현하고 있으며, 부처의 얼굴을 새간 탑을 사방에 거느린 중앙 금자탑의 높이는 땅에서 무려 45미터. 중앙 금자탑 주변에는 부처의 얼굴을 하나씩 새긴 여덟 개의 작은 탑이 별들처럼 둘러싸고 다시 그 주위 를 40개의 사면불탑이 피라미드형으로 솟아 있다. 49개의 탑(처음에는 53개의 탑이었다고 전해짐)에 새겨진 부처의 얼굴은 200개에 가깝다. 옅은 미소를 띄고 있는 부처, 명상을 하는 듯한 부처, 환한 미소를 짓는 부처등 이 관음상들은 각기 다른 형상을 하고 있다. 거대한 불상들의 모습에 탄성이 날 뿐이다. 바이욘 사원을 구석구석 살펴 보았다.
1296년 원나라 성종 황제의 명령을 받은 대사 일행중 주달관은 <진랍일기>라는 저서에서 앙코르를 다녀간 느낌을
적었다. "오면불이 도성을 내려다 보고 있다. 네모난 탑의 각 면에 부처의 얼굴이 있다. 각 면의 네 개와 별도로 정상에
황금의 부처 얼굴이 하나 있다." 지금 황금의 부처는 없지만 그 당시에는 탑과 축대 부처 얼굴이 황금으로 되어 있었다고 하니 그 시대의 영화로운
생활상이 상상이 갈 뿐이다. 대도성의 문은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열려 있었으며 자유롭게 드나들어 상인, 여행자, 학자, 사절단, 전사,
전도사들이 다녔다 한다. 왕궁의 경우 공식적인 장소만 돌아 볼 수 있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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