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캄보디아(2001)

[캄보디아]프놈펜

제로미의 2005. 3. 6. 21:01

  7월 17일 (화) ... 프놈펜          " 쯥립수어!"

 

하노이 공항에서 가이드 "정"과 작별을 하고 비행기에 오른다. 비행기 아래로 내려다 보니 거대한 메콩강 줄기가 보인다. 처음엔 커다란 지형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메콩강이라 한다.  메콩강은 중국의 티베트에서 발원하여 미얀마 ·라오스 ·타이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르는 강이다.

 

중국의 티베트에서 발원하여 미얀마·라오스·타이·캄보디아·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르는 강으로 길이 4,020km, 유역면적은 80만km2이다. 동남 아시아 최대의 강이며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큰 강이다. 처음에는 중국의 칭하이성 [靑海省] ·티베트 지방의 여러 강이 창두[昌都] 부근에서 합류하여 란창강[瀾滄江]이 되고 윈난성[雲南省]을 남류하여 라오스와의 국경에 도달한다. 라오스에서는 1,500km에 걸쳐 흐르는데 하류는 폭이 좁아지고 깊어지다가 라오스와 캄보디아와의 국경에서 콩 폭포를 이룬다.

 

그 뒤 캄보디아를 남류하다가 크라티에에 이르는데, 이 부근부터 프놈펜까지는 상당히 큰 선박의 항해도 가능하며 지류들을 합쳐서 수량은 더욱 풍부해지고 흐름도 완만해진다. 프놈펜 주변에서 북서쪽의 통레사프강(江)과 합류했다가 프놈펜 남쪽에 이르러 두 강으로 갈라지는데, 동쪽으로는 본래의 메콩강이 흐르고, 서쪽으로는 분류인 바삭강(江)이 흐른다. 이 지점에서는 4개의 강이 K자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4개의 팔’이라 불린다.

 

여기서부터 베트남으로 들어가 220km를 흐르는데 흐름은 매우 완만하고 폭이 2km나 되며 유역에는 메콩 삼각주의 무논[水畓]지대가 펼쳐진다. 남중국해로 들어가기 전에 메콩강은 다이강(江)을 비롯한 9개의 강으로 갈라지는데, 이 때문에 베트남에서는 메콩강을 구룡강(九龍江)이라고도 부른다. 메콩강은 동남 아시아의 다른 강들과 마찬가지로 계절풍의 영향을 받아 건기인 3∼5월에는 최저 수위를 나타내고, 남서 계절풍이 불어오는 우기에는 수량이 증가한다. 특히 우기에는 통레사프강이 역류하여 그 상류에 있는 통레사프호(湖)로 흘러들어가, 호수의 면적이 건기의 약 3배로  불어나 범람한다.

 

인도차이나 교통 ·생활상의 대동맥으로, 특히 베트남에서는 종횡으로 수로가 건설되어 없어서는 안 될 요로(要路)이다. 메콩강이 반출하는 이토(泥土)는 연간 10억m3 나 된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하구부의 삼각주가 현저하게 커지고 타이만(灣)이 얕아져 현재는 어류에 영향을 주고 있다. 1957년 유엔 극동경제위원회(ECAFE)가 메콩강 개발을 추진하여 세계각국의 기술 ·경제원조로 지류에 여러 개의 댐을 건설했다. 수력발전 개발, 용수 공급시설 건설 등 방대한 사업이 계획되고 있으나, 연안 여러 나라의 국가체제의 차이 등으로 난관이 많다.

 

중간에 라오스에서 잠시 내렸다. 하노이 보다 시설이 더 좋다. 신문을 보니 북한의 김영남이 인도차이나 반도 국가들을 방문하고 있는지 얼굴과 기사가 있다. 다시 출발하여 캄보디아의 프놈펜 공항에 도착했다. 캄보디아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잠시 시간을 지체한다. 단체 발급이라 빨리 발급받기 위해  웃돈을 약간 올려주는 것 같다. 무사히 비자 발급도 끝나고 공항을 나섰다. 이 곳에서 가이드를 할 직원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우리를 맞는다. 차에 올라 호텔로 향한다. 이 곳에도 북한 김영남 환영차 양국의 국기가 거리마다 펄럭인다. 하노이는 오토바이가 주 교통수단이었다면 이곳은 자동차가 더 많다. 도시도 깨끗해 보이는 것이 오히려 더 잘 사는 나라 같다. 호텔에 짐을 내려 놓고 처음 간 곳은 왕궁앞이다.

 

왕궁 앞에서 사진을 찍고 그 옆에 보이는 강이 메콩강이라 한다. 북서쪽의 통레사프강(江)과 합류하는 지점이라 한다.

 

그 옛날 앙코르의 영광을 되찾을 듯 도시 곳곳이 앙코르를 본딴 건축과 나가(뱀)로 이루어진 거리의 장식을 보게 된다.

 

프놈펜은 15세기부터 캄보디아의 수도로 등장, 앙코르가 버려진 후부터 성장을 시작하여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지배 때는 아름다운 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프놈펜은 "산"을 의미한다.

 

이 곳의 근대, 현대 역사를 알지 못하고는 프놈펜을 제대로 이해 할 수 없다. 영화 킬링필드의 주무대인 바로 그 곳이다. 투올슬랭 형무소로 향했다. 한때 고등학교였지만 투올슬랭 은 폴포트 통치 기간동안 크메르 루즈의 고문실로 이용되었 다. 거의 2만명의 캄보디아인이 고문 시설을 거쳐 갔다.

 

킬링필드의 영화를 상상하면 좀 더 이해가 쉽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Lon Nol장군의 부패정치로 폴포트에 의한 크메르루즈가 급진혁명을 추진하며 대량 학살이 자행되며 지식인들은 모두 죽였다고 한다. 어린 소년들을 내세워 아무 생각 없이 학살의 선봉장에 서게 했다고 하니 그 시절이 무섭기만 하다. 하다못해 영어만 해도, 안경만 써도, 굳은살이 없는 손을 가진 사람 등을  지식인으로 판단하여 모두 죽였다고 한다.

 

투올슬랭 형무소를 둘러보니 사상을 초월하는 온갖 처형 방법을 동원하였다. 지식인들을 가두고 모두 발목 열쇠를 채웠고, 개개인의 신상정보를 모두 없애버려 누군지도 알 수 없게 하였으며, 정보를 모두 캐낸 다음에는 처형을 했으니 그 잔학상에 혀들 내두를 뿐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사진은 외무장관 부인으로 추정되는 어느 여인의 사진이다. 살아 있는 사람을 뒤에서 못을 박는 처형 방법이 처형전과 처형후로 구분되어 전시되어 있었다.  암울했던 한 시대를 보는 듯 했다.  

 

다음은 잘 알려진 킬링필드 현장을 갔다.  원래는 프놈펜 시내에도 여러 곳이 있었는데 지금은 프놈펜시에서 약 15km 떨어진 조용한 시골에 있다. 이곳은 75년부터 97년말 만명 이상의 양민들이 학살을 당한 곳이다. 학살에 사용되었음직한 나무와 그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보다 더 잔혹했을 듯 싶다. 지금은 당시의 잔학성을 기억하기 위해 위령탑이 세워져 있고 그 때 사살된 유골들이 나이별로 전시되어 있었다. 어린 소년들의 유골이 많았다. 그 당시는 글자를 아는 것 만으로도 처형의 사유가 되었다고 하니 아직도 문맹율이 70%가 넘는다고 한다.

 

킬링필드를 돌아보니 이 사회를 지배하는 정치가에 따라 인간의 삶이 이렇게 피폐해 질 수 있다라는 사실이다. 덕분에 아직도 낙후되어 조상이 물려준 앙코르 유적군이 얼마나 큰 자산인가 싶다. 킬링필드 주변의 관광객을 쫓아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 좀더 잘 살수 있는 나라가 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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