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11월 10일(화)
오늘은 면앙정부터 둘러 봤다. 조선 중종 28년(1533)에 송순 宋純) 선생이 중추부사(中樞府事) 대사헌(大司憲) 관직을 그만두고 향리(鄕里)인 이곳에 와서 면앙정을 건립하고 퇴계 이황 선생을 비롯하여 강호제현(江湖諸賢)들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길러내던 유서 깊은 곳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며 추녀 끝을 4개의 활주 (活柱)가 받치고 있다. 그리고, 측면과 좌우에 마루를 두고 중앙에 방을 배치하였다.
호남가단을 이루었을 정철, 임제, 기대승등과 교류하며 정치를 뒤로 한 채 은일했을 그들의 정취가 부럽기만 하다.
광주로 가기 위해 다음은 송강정.
앞으로는 병풍산에서 흘러내리른 죽록천 건너로 봉산 들판이 펼쳐져 있다. 서인의 영수였던 송강은
동인의 모함으로 나이 49세 때 이곳으로 낙향했다. 그는 평생 시와 술을 즐겼다.
거문고에도 조예가 깊어 사육신 중 한 사람인 성삼문의 집뜰에 있던 오동나무로 만든 거문고를 평생 애용했다. 송강정에서 4년을 머물면서 거문고,노래.술로 울분을 삭이고 임금에 대한 충정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가사문학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이다.
『사미인곡』은 제명(題名) 그대로 연군지정(戀君之精)을 읊은 노래이다. 그 수법은 한 여인이 남편을 이별하고 사모하는 정을 기탁해서 읊은 것인데 송강 자신의 충정을 표현한 노래라 하겠다.
<송강정>
당시에는 노송과 참대가 무성하여
'죽록정'이라고 불렀으나 후손들이 1770년에 증축을 하면서 송강정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정자 유람을 뒤로 하고 광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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