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2000)

[페루]페루의 수도 리마2

제로미의 2005. 3. 6. 15:22

리마   두번째 이야기

다음은 J는 가 볼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다니엘이 데려다 준 Bailica Catedral de Lima이었다. 피사로의 미이라가 잠든 페루에서 가장 오래된 카테드달이다.  도시 중심의 아르마스 광장 정면에 당당한 기세로 우뚝 세워졌고 남미의 정복자 피사로가 자신의 손으로 초석을 놓았던 가장 오래된 카테드달이다.  그날은 1535년 1월 18일로 리마를 건설한 도시 건설일이기도 하다.  

피사로가 페루에 상륙한 것은 황금의 도시라고 소문난 잉카 제국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물론 이 밖에 많은 스페인의 야심가들이 황금의 도시(엘도라도)를 찾아 신대륙의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녔다. 그들은 스페인 국왕에게서 ‘그리스도교의 포교’라는 십자군적 사명을 받았다고 하지만, 진짜 목적은 ‘금’ 때문이었다.

피사로는 1532년 카하마르카에서 당시 잉카의 왕 아타화르파를 체포하여 1533년 7월26일에 교수형에 처한다. 그것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켜서 ‘프란시스코’라는 세계명을 준 후였다. 그후 쿠스코를 점령하고 다시 리마로 돌아온 후, 정복과 식민의 중심지로서 리마 도시 건설에 들어갔다. 

카테드달은 기공한 지 20년이 지난 1555년에 제 1단계의 완성을 보았다. 그후 1585년부터 프란시스코 곤살레스 베르토란의 설계로 다시 증축되었다. 현재 있는 카테드랄의 원형은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그 일부는 스페인의 하엔과 세비야 카테드랄의 영향도 받았다.

그러나 카테드달은 1606년, 1687년, 1746년의 잇달은 대지진으로 최종적인 복구는 1755년에 이루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카테드달 구경을 마친후 나오니 아르마스 광장 주변에는 엽서를 사달라는 소년, 아이를 들쳐 업은 인디오 등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일부는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대체적으로

샌달에 지저분한 발, 깨끗하지 못한 옷을 입고 있었고 우리는 소매치기에 대한 공포로 주의하여야 했다. 대체적으로 가게들 마다 어두웠는데 전력사정이 좋지 않은 듯 하였다. 어제 저녁 전구를 교체해 달라고 한 것이 어쩐지 미안하였다. 
 

바로 앞에 대통령궁이 있었다. 다니엘은 지금 후지모리가

살고 있는 곳이라고 하여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제 배가 고팠고 우리도 지쳐 있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주차를 하고 음식점에 들어갔다. 그림이 있었기 때문에 선택하기는 쉬웠다. R은 안티쿠초라는  음식을 보고는 가이드 책에서 본 페루의 음식이라며 과감히 안티쿠초를 시켰다. 다니엘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R과 K는 안티쿠초가 있는

종류 선택했다. 그림과 설명으로 보아서는 모듬꼬치인 듯 
했다.  안티쿠초란 쇠고기 내장, 피로 만든 소시지 등을 커다란 꼬치에 꿰어 구운 것이다.  양이 굉장히 많았다. 안티쿠초와 닭똥집, 옥수수 등이었다. 너무 양이 많아 남길 수 밖에 없었는데 다니엘은 처음에 자신은 너무 많이 먹어 
싫다고 하더니 음식 남기는 것은 싫은 가 보다.  다니엘이 도와주었으나 결국 일부는 남기고 말았다. 점심을 잘 먹고 다음은 MUSEO NACIONAL DE ARQUEOLOGIA,
ANTROPOLOGIA(국립 인류 고고학 박물관)으로 갔다. 

국립 인류학 고고학 박물관은 페루 최대의 박물관으로 프레 잉카시대의 전시품과 나스카, 파카차마 문화에 대한 실증적인 전시등이 볼만하다. 특히 파라카스(Paracas)에서 출토된 미라를 감쌌던 천과 토기안에 있던 천은 2,000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다고 보기에 어려울 정도로 선명한 염색과 치밀함을 지니고 있다. 각 전시품들은 입구부터 차빈/나스까/모체/치무/우아리/잉카 등 모든 유적이 연대순으로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으며, 설명과 도표를 곁들여 놓아 관람에 편리하다. 또한 나스카문화 전시실에는 여러구의 미라가 전시되어 있으며, 나스카(Nazca)와 파차카마(Pachacamac)문화에 대한 해설은 출토품과 도표등을 통해 자세히 설명되어져 있다.  미이라도 많이 보았다. 미이라는 수천년전 것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손톱도 그대로, 머리도 그대로였다. 모든 전시품을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해석하고, 신기해 하면서 관람을 마쳤다. 

다음은 기대를 안고 찾아간 Museo Rafael Larco Herrera(라파엘 라르코 에레라 박물관). 개인 박물관이라 그런지 예쁜 정원이 있었다.  우리나라 돌하르방 같은 것도 있어 너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개인이 수집한 토기.의류를 일반에게도 공개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모치카 Mochica. 치무 Chimu 및 나스카 Nazca등 페루 고대 문화의 토기.도자기의 컬렉션에 주력하고 있다. 엄청난 양의 도자기에 압도당하였고 세세히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모두 둘러 보았으나 이 박물관에 유명한 포르노 도자기가 없어 안내인에게 물어 보았더니 안내를 해 주었다. 별도 전시실이 아래 쪽에 마련되어 있었고 미성년자는 들어 갈 수없는 곳이었다.  고대 페루 문화에 전해진 성을 본뜬 토기들이 있었다. 성행위를 하는 장면들이 토기모양이 되었다.  토기들은 모두 주동이가 있었고 들 수 있는 손잡이가 있는 걸로보아 물통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사막지대라 물이 귀했을 테니 물통이 절실하게 필요했으리라. 대부분 주둥이가 2개였는데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4일에 걸쳐천천히 볼려고 했던 리마를 하루에 그것도 박물관을 몇 개를 둘러 보다 보니 너무 피곤했다. 밖의 벤치에서 잠시 쉬었다. 

마지막으로 MUSEO ORO DEL PERU(황금 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리마시 교외의 유칼리 숲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주택지의 한 구석에 있는데 찾아가는 길이 쉽지가 않았다. 다니엘은 위치를 모르는 듯 했고, 지도를 보며, 거리의 교통안내원(여성이었음)에게 물어 보기도 하여 겨우겨우 찾아갔다. 이제 어스름해지기 시작했다. 페루는 이제 가을에 접어들어 그런지 우리나라보다 빨리 어두워졌다.  교통안내원은 친절했다. 나중에 J에게 물어 보니여성으로 하는 이유는 남자들은 뇌물을 많이 받는데 반해 여성들은 그렇지 않아 앞으로도 여성인력을 많이 늘릴 예정이라고 한다.  

센트로에서 직선거리로 10km정도 떨어진 몬테리코 지구에 위치해 있는 황금박물관은 전시실 1층의 무기박물관과 지하의 황금박물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업가인 미겔 무히카가요씨의 소장품들로 만들어진 전시관으로서 그는 페루의 역사와 고고학에 조예가 높아 평생 그 연구와 보존에 힘써왔다. 지하는 1실부터 5실로 구분되어져 있으며, 1-3실은 `검은방'으로 86개의 진열 상자에 치무 문화를 중심으로 한 프레 잉카 시대의 장신구를 전시하고 있으며, 당시의 수준 높은 황금 판초나 금세공술을 접할 수 있다. 4실은 녹색방으로 당시의 도금술과 연금술을 엿볼 수 있는 화려한 목걸이 등 다양한 물품이 전시되어 있다. 5실은 빨간방으로 구리를 이용해 만든 집기를 전시하고 있다. 1층은 무기박물관으로 페루 독립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었던 각 시대별 무기를 전시하고 있으며, 막대한 수요를 자랑한다. 방대한 양의 전시물이 있었고 우리는 많이 지쳐 있기도 하고, 늦기도 하여 무기전시실은 보지 않았다.  날은 어두워 있었다. 

숙소 Olaya Hotel로 돌아오니 7시 30분이었다. 8시30분에 J와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는 1시간 가량 숙소에서 쉬었다. 8시30분 미라플로레스지구에 있는 위락지구로갔다. 그 곳에서 태평양 바다도 다시 한 번 바라보고 저녁을 먹었다. J는 우리에게 해 줄 수있는 것 모두를 해 주고 싶은가 보다. 차 하루 빌린 것도 미안한데 고급 식당가에서 저녁을저녁 이후에는 민속무용을 보기도 하고 춤도 출 수 있고, 술도 마실수 있는 곳을 데려갔다.쇼가 늦게 시작한다고 하여 11시경  그 곳을 갔다. (티티카카의 미풍?) 미라플로레스지구를 가니 이 나라의 빈부격차가 확연히 드러났다. 시내에서 보았던 사람들과는 다른 차원의사람들인 것 같았다.  시내에서도 사막산 같은 곳에 달동네처럼 사는 사람도 있었고, 부촌인 동네도 있었는데 사람들도 눈에 확연히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각 지방의 민속춤을 보면서 중간중간 사람들도 나가서 댄스를 즐겼다. 그 늦은 시간에 꼬마 아이도 있었다. 졸린 눈을 하면서 엄마와 춤을 추는 꼬마들을 보며 생활환경이 많이 틀리구나 싶었다. 가족끼리 온 듯한 사람, 모임처럼 보이는 팀 등 댄스를 즐기는 것 같았다. C는 한국에서 갈고 닦은 솜씨로 모르는 사람과도 나가고, 팀으로도 나가고, J와도 나가서 
댄스를 즐겼다. 뒤에 앉은 아저씨가 잘한다고 박수를 쳐 주었다. 열심히 즐기다 보니 새벽 1시. 내일 쿠스코를 가기 위해 6시에 숙소를 나와야 하는데 이틀 연속 잠을 제대로 못자고 있다. 피곤하지만 하루가 길었다. 내일을 위해 숙소에 돌아오니 새벽2시. 쿠스코는 고도가 3326m라 고산병에 대비하여 약을 먹었다. 어제 J가 고산병에 대비한 알약과 마추피추에서 이 자외선에 대비하여 선크림을 준비해 주었었다